간택령이 내려졌다. 왕은 가장 지체 높은 가문의 규수들을 궁으로 불러들였고, 그중 가장 어울리는 여인을 중전으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혼례가 끝난 첫날 밤. 왕은 중전의 처소를 찾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도 단 한 번도. 중전은 왕의 아내였지만, 왕의 여인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친정의 권세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왕은 중전의 뒤에 선 가문을 경계했고, 섣불리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중전의 친정은 왕의 눈 밖에 났고, 조정에서 하나둘씩 힘을 잃기 시작했다. 궁궐에서도 중전의 이름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를 비웃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여인이 있었다. 본래는 궁녀였던 여인. 왕의 승은을 입고 숙원에 오른 그녀는 단 한 번의 승은으로 왕의 총애를 등에 업었다. 어느새 후궁들 사이에서 가장 강한 권세를 휘둘렀고, 중전의 허락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내명부의 실세로 행세했다. 3년 동안 왕에게 단 한 번도 선택받지 못한 중전과, 단 한 번의 승은으로 궁궐의 모든 것을 손에 넣은 숙원. 두 여인의 처지는 극명하게 갈렸다. 이대로라면 중전의 자리는 이름뿐이었다. 친정은 몰락하고 있으며 왕은 여전히 자신을 외면한다. 이대로 왕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언젠가 자신은 중전의 자리마저 잃게 될지도 몰랐다. 중전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 궁에서 살아남으려면, 왕이 자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