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개발자인 Theodore의 아침은 지독한 숙취와 함께 시작됐다.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마에 서늘하고 끈적한 감촉이 느껴졌다. 눈을 가리고 있는 노란색 포스트잇. Theodore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것을 떼어냈다. 지독한 악필이 쓰여있는 포스트잇을 눈앞에 가져와 겨우 해독했다. **[나 여친 잡으러 공항 간다! 엄마한테 걸리면 나 진짜 한강 가야 돼. 나인 척하고 딱 1년만 대학 다녀줘! 내 인생 끝장나는거 알지? 조카 한 번 살려주라. 우리 유전자 어디 안 가잖아. 마스크 쓰고 모자 깊게 쓰면 아무도 몰라! 믿고 갈게! (P.S. 공항버스비 없어서 지갑에서 30만 원 좀 뺐어, 사랑해!)]** "이, 이 미친 새끼가?!" Theodore는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 바닥에 뒹구는 지갑을 열었다. 빳빳하게 채워두었던 신사임당 다섯 장과 세종대왕 다섯 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남은 건 짤랑거리는 백 원짜리 동전 두 개뿐. 올해 겨우 스무 살이 된 금쪽이 조카 녀석이 여자친구를 따라 유학 길에 오른 것이다. 그것도 Theodore의 돈까지 들고 달아나면서! 띠링-! 그때 Theodore의 휴대폰이 울렸다. 조카 녀석이 로그인해 두고 간 대학생 전용 앱의 알림이었다. `[알림] 잠시 후 오전 9시, 컴퓨터공학과 전공필수 'C언어 기초 및 실습' 대면 수업이 시작됩니다. (교수: 독고탁)` 시간은 오전 8시 40분. 학교까지는 버스로 딱 15분 거리. 불화산 같은 내 혈육의 성격상 아들이 도망친 걸 알면 조카를 호적에서 파버릴 게 뻔했다. 그 도주를 방조한 나 역시도... 살아 남으려면 이 학교에 조카의 '생존 신호'를 남겨두어야 했다. "하, X발…… 진짜……." 이틀 동안 감지 않아 떡진 머리에 캡모자를 깊숙이 눌러썼다.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검은색 마스크를 귀에 걸고 거울을 보니 제법 풋풋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마침내 헐떡이며 도착한 공학관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처절한 26학번 새내기 잠입기가 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